폐교

폐교 앞 분식집의 마지막 날 – 지역 상권과 함께한 30년

meat-mandu 2025. 7. 15. 14:38

어느 날, 학교가 폐교 되었고 가게도 조용히 닫혔다

이 분식집은 이름조차 없었다. 간판은 오래전에 바람에 떨어졌고, 메뉴판은 종이테이프로 붙여놓은 A4 용지 한 장이었다. 하지만 이 가게는 동네 아이들에게 ‘학교 앞 떡볶이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왔다. 남천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 붉은 파라솔 두 개 아래 자리한 테이블은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아이들로 가득 찼다.

 

어느 날, 학교가 폐교 되었고 가게도 조용히 닫혔다

 

주인인 김 여사는 지난 30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아이들의 간식과 고민을 함께 나눴다. 그런데 학교가 폐교되자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등굣길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사라졌고, 놀이터에서 들리던 웃음소리도 멎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작은 분식집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느 날 김 여사는 결정했다. 마지막 떡볶이를 팔고, 조용히 가게 문을 닫겠다고. 이 이야기는 하나의 가게가 아니라, 학교와 함께 호흡했던 작은 경제 생태계의 마지막 숨결에 대한 기록이다.

 

 

김 여사와 떡볶이 냄비 속에 담긴 세월

김 여사는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 10시에 문을 열었다. 아이들의 취향은 세월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떡볶이, 순대, 튀김, 그리고 오뎅. 메뉴는 단순했지만 맛은 복잡했다. 김 여사는 육수를 직접 내고, 고춧가루는 동네 방앗간에서만 고집했다. 90년대에는 300원짜리 떡볶이가 인기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김밥을 싸 가는 아이들이 늘었다. 그렇게 세대가 바뀌어도 아이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고프고, 친구가 필요했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간절했다. 김 여사는 아이들이 남긴 공책 낙서도, 떨어뜨리고 간 머리핀도 모아서 따로 보관해 두곤 했다. “걔가 다시 올 줄 알고.” 그렇게 한 아이, 한 세대, 그리고 한 동네의 역사를 가게 안에서 조용히 적어내려갔다. 하지만 학교가 문을 닫은 이후, 가게는 더 이상 미래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문을 여는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떡볶이 냄비는 예전처럼 가득 채워지지 않았다.

 

 

학교는 폐교됐고, 상권도 함께 스러졌다

폐교가 단지 교육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순환 경제, 소통의 네트워크, 정체성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이다. 남천초등학교가 문을 닫은 이후, 그 주변의 작은 상권은 빠르게 무너졌다. 문방구는 사라졌고, 학생들이 줄 서던 빵집은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교복을 팔던 작은 의류점도 1년을 버티지 못했다. 김 여사의 분식집은 가장 오래 버틴 가게였다. 이유는 단 하나, 그녀에게 이 가게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이 없으면 가게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지역 사회는 점차 노령화되었고, 젊은 가족들은 도시로 떠났다. 결국 그 작은 골목은 더 이상 아이들의 소리를 담지 못했고, 김 여사는 ‘이제는 나도 그만할 때’라고 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은퇴 선언이 아니라,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조용한 작별이었다.

 

 

그날의 떡볶이 냄새는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마지막 날, 김 여사는 평소보다 두 배의 양을 준비했다. 아무도 오지 않을까봐 걱정했지만, 오후가 되자 하나둘씩 아이들이 나타났다. 아니, 이제는 성인이 된 그 아이들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왔고, 누군가는 대학생이 되어 돌아왔다. “여기 아직도 그 맛이에요?”라는 말에 김 여사는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가게 앞에는 오래된 플라스틱 의자 몇 개가 놓였고, 옛 동창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웃고 떠들었다.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것처럼. 김 여사는 마지막 떡볶이를 나눠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썼다. 가게 문을 닫은 그날 밤, 그녀는 가게 안에 남은 조리 도구와 손때 묻은 앞치마를 차곡차곡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작은 메모 한 장을 붙였다. “30년 동안 고마웠습니다. 당신들의 웃음 덕분에,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 가게는 사라졌지만, 그 떡볶이 냄새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폐교는 건물을 닫았지만, 그 앞에서 이어지던 이야기들은 지금도 사람들 마음속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