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도심 한복판 폐교를 1인 극장으로 만든 남자의 프로젝트

meat-mandu 2025. 7. 16. 13:35

사람이 사라진 폐교 교실에 다시 불이 켜졌다

서울의 중심부, 오래된 골목을 지나면 조용히 숨은 폐교 하나가 나온다. 1998년에 폐교된 이 초등학교는 수년간 비어 있었다. 유리창은 깨졌고, 운동장은 잡초로 덮였으며, 교문은 녹슬어 반쯤 열린 채 방치되었다.

 

사람이 사라진 폐교 교실에 다시 불이 켜졌다

 

그곳에 2022년, 다시 불이 켜졌다. 이번엔 학생이 아닌 한 남자의 손으로. 조명 장비를 짊어진 30대 영상 크리에이터 박도윤 씨는 이 폐교를 임대해 혼자만의 극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한 공간.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을 위한 무대였다. 박 씨는 교실 하나를 스크린 룸으로 개조하고, 교무실을 편집실로 꾸몄다. 방송국에서 퇴사한 후, 혼자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사람들 대신 폐허를 선택했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던 공간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아이들이 뛰놀던 공간은 이제 그의 시나리오와 조명, 그리고 카메라 움직임으로 다시 살아났다. 폐허의 정적을, 창작의 리듬이 다시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관객은 나 하나면 충분하다” – 1인 창작자의 고백

박 씨는 단 한 명의 관객도 들이지 않는다. 그가 만든 이 ‘1인 극장’은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창작 성소다. “지금의 창작 환경은 너무 시끄러워요. 조회수, 구독자, 알고리즘… 그런 숫자 말고, 진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그는 말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폐교 내 편집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조명이 잘 드는 교실 한편에서 촬영을 시작한다. 벽에는 과거의 게시판과 아이들의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위에 그의 시나리오가 겹쳐지고, 영상이 투사된다. 그의 영화 속 배경은 대부분 이 학교다. 낡은 복도, 텅 빈 교실, 체육 창고, 옥상… 모두가 세트장이자 상징이다. ‘잊힘’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그의 작품은 상영관이 아닌, 교실 속 스크린에서 홀로 재생된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 결과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폐교 시네마’라고 불렀고,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극장은, 단 한 명만을 위한 공간이지만, 세상 어떤 멀티플렉스보다 진실하다.

 

 

도심 폐교, 죽은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의 시작점이다

사람들은 종종 ‘폐교’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하지만 박 씨는 그 이미지를 뒤집었다. 도심 한복판의 폐교는 사실 거대한 가능성 덩어리였다. 이미 건물은 튼튼하게 지어졌고, 전기와 수도, 인터넷 회선이 일부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방해받지 않는 고요함은 창작자에게는 최고의 자산이었다. 박 씨는 서울시의 유휴공간 활용 정책을 통해 폐교 임대 신청을 했고, 비교적 저렴한 조건으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쓰지 않는 건물’에 입주한 것이 아니라, ‘기억이 잠들어 있는 공간’을 깨웠다. 그리고 창작을 통해 그 공간에 새로운 층위를 입혔다. 수십 년 동안 웃음과 울음이 가득했던 교실에, 이제는 빛과 소리, 장면과 대사가 흐른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1인 창작이 아닌, ‘도심 폐교 활용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몇몇 지역자치단체와 예술 기관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으며, 다른 창작자들도 폐교를 향해 눈을 돌리고 있다. 폐교는 더 이상 죽은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남긴 틈이고, 그 틈을 통해 새 이야기가 피어난다.

 

 

무대는 끝났지만, 폐교 극장은 계속된다

박 씨의 1인 극장 프로젝트는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든다. 현재까지 그는 4편의 단편 영화를 완성했고, 그중 일부는 독립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관객을 받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꺼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끝났다고 여겨졌던 곳이에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시작했죠. 아이러니하죠?”라고 그는 웃는다. 폐교는 종종 도시의 상처처럼 방치된다. 그러나 박 씨처럼 누군가는 그 상처를 예술로 봉합하고, 미래의 무대로 바꾼다. 폐허가 된 운동장에 밤이면 그의 장비 불빛이 비친다. 교실 안에서는 여전히 촬영 중이다. 그에게 이 공간은 더 이상 폐교가 아니다. 삶과 예술이 교차하는, 유일한 극장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새로운 장면을 찍고, 새로운 감정을 기록 중이다. 무대는 닫혔지만, 극장은 살아있다. 창작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폐교의 숨결도, 그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