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폐교 기숙사에서 일어난 단 한 번의 재회 – 47년 만의 동창 모임

meat-mandu 2025. 7. 16. 17:15

멈춘 시간 속, 다시 열린 폐교의 기숙사 문

1977년 여름,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에서 한 지방 중학교의 기숙사가 문을 닫았다. 마을 인구 감소와 학령 인구의 급감으로 학교는 폐교 결정이 내려졌고, 그와 함께 기숙사도 자연스럽게 닫혔다.

 

멈춘 시간 속 다시 열린 폐교의 기숙사 문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이불을 개었고, 누군가는 손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그렇게 4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기숙사는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낡은 창틀, 벽에 걸린 오래된 게시판, 번호가 적힌 작은 금속 침대들. 아무도 손대지 않았지만, 아무도 잊지 않았던 공간이다. 바로 그 공간에, 2024년 가을. 그 시절 기숙사생 8명이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연락이 닿았고, 한 명이 제안했다. “우리, 다시 거기로 가볼까?” 그렇게 시작된 단 한 번의 재회. 세상은 달라졌지만, 기숙사 복도에 퍼지는 발걸음 소리만큼은 여전했다. 사람보다 시간이 더 많이 쌓인 공간에서, 그들은 서로를 다시 만났다.

 

 

침대 번호 하나로 기억이 살아나다

기숙사에 들어선 순간, 모두가 말없이 침묵했다. 시간은 정지해 있었고, 그 속에 묻힌 기억들이 고요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던 침대 번호를 기억했고, 누군가는 창가 쪽 자리에서 몰래 책을 읽던 밤을 떠올렸다. 8명 중 3명은 처음 보는 듯한 낯설음이 있었지만, 목소리 하나, 눈빛 하나가 기억을 꺼냈다. “네가 그때 혼자 라면 끓이다가 걸린 애구나.”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묻혔던 기억들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재회는 그저 만남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는 문이었다. 기숙사 안에서 그들은 전자기기를 멀리하고, 옛 방식대로 서로를 불렀다. 휴대폰은 꺼지고, 이야기가 켜졌다. 10대 시절의 감정이 주름진 얼굴 위에 겹쳐졌다. 침묵은 없었고, 침대 번호 하나로 마음의 거리도 사라졌다. 그날 밤, 기숙사의 오래된 형광등은 다시 불을 밝혔다. 마치 1977년의 마지막 밤처럼.

 

 

폐교, 건물이 아니라 감정이 남는 곳

사람들은 폐교를 ‘버려진 건물’로만 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이 있다. 특히 기숙사는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었다. 함께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며 형성된 관계의 집합체였다. 47년 전 그 기숙사는 누군가에겐 첫사랑의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탈출하고 싶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감정은 결국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정리되었다. 폐교는 수업이 멈춘 공간이지만, 기억은 계속 자라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모였을 때, 기숙사 방 하나하나에 감정이 다시 투영되었다. 낡은 벽에는 여전히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고, 오래된 사물함 안에는 누군가 남기고 간 쪽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제서야 우리가 이 공간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말했다. 폐교란 단지 비워진 것이 아니라, 어떤 기억이 너무 오래 머물러버린 공간이다. 그 공간에 다시 발을 들인 순간, 그 기억은 다시 살아났다.

 

 

다시 떠나며, 그들은 마지막으로 서로를 안았다

하룻밤의 재회가 끝나고, 아침이 밝았다. 기숙사의 창문 너머로 햇살이 스며들었고, 낡은 나무 바닥 위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누구도 먼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침대에 앉아 조용히 방을 둘러보던 그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여길 기억하는 유일한 세대일지도 몰라.”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서로를 껴안았다. 울음도 없었고, 과장된 말도 없었다. 그냥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감정은 고요했고, 진심은 깊었다. 그들은 다시 이 공간을 떠났지만, 마음 어딘가엔 분명히 그 기숙사가 남아 있었다. 그 폐교는 여전히 문을 닫은 채로 있을 테지만, 이제 그곳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새겨졌다. 그리고 언젠가 또 누군가가, 잊고 있던 기억을 찾기 위해 그 기숙사를 찾을지도 모른다. 폐교는 끝이 아니라, 언젠가 돌아가야 할 감정의 주소다. 그리고 그 주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이야기 역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