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폐교 리모델링 체험기 : 시행착오와 진짜 배운 것들

meat-mandu 2025. 6. 29. 22:45

계획만으로는 부족했다, 처음부터 어긋났던 시작

나는 처음에 폐교 리모델링이 단순히 ‘낡은 건물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리 세운 계획표도 있었고, 머릿속엔 카페, 워크숍실, 갤러리, 회의실 같은 멋진 공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실제로 폐교 현장을 처음 마주한 날, 나는 내가 얼마나 현실을 모른 채 시작했는지 깨달았다.

건물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외관은 그럴듯했지만 내부는 습기와 곰팡이, 부식, 균열이 예상보다 많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수도도 모두 끊긴 상태였다. 지붕은 슬레이트였고, 유리창 일부는 깨져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계획만으로는 부족, 처음부터 어긋난 시작

 

나는 처음에 지인 인테리어 업체에 시공을 맡기려 했지만, 폐교 리모델링은 단순 인테리어가 아니라 건축 개보수+인프라 구축에 가까웠다.
전문가가 구조 진단을 하지 않으면 사고 위험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추가로 건축사무소에 정밀 안전진단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계획했던 예산과 일정은 이미 무너졌다.

또한 시청과 교육청, 건축과, 소방서 등 관계 기관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는 처음 몇 주 동안 하루에도 여러 번 관공서를 오가며 공문을 다시 쓰고, 도면을 수정하느라 진을 뺐다.
그때 배운 건, 폐교 리모델링의 진짜 시작은 ‘디자인’이 아니라 ‘행정’이라는 사실이었다.

 

잘못된 선택, 과감히 되돌린 순간들

리모델링 초기에 가장 크게 후회한 건 ‘싸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나는 초기 예산을 아끼기 위해 일부 공정을 ‘직접 해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페인트칠이나 바닥 시공, 커튼 설치 등은 유튜브 영상만 보고도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해본 결과는 ‘수리’가 아니라 ‘복구’였다.

특히 바닥 공사는 최악이었다.
나는 값싼 마감재를 직접 구매해 접착제로 붙였는데, 습기를 고려하지 않아 2주 만에 들뜨고 말았다.
결국 해당 구역은 다시 철거 후 전문가 시공으로 재시공했고, 시간과 돈을 두 번 쓴 셈이었다.

또 다른 실패는 조명 설치였다.
나는 감성적인 분위기를 원해 빈티지 전구 조명을 온라인으로 대량 구매했지만,
정작 전기용량을 계산하지 않아 몇 구역은 조명이 켜지지 않았다.
전기 기사의 말에 따르면 조명 배선 분배와 전압 조절을 고려하지 않은 설치는 오히려 전기 누전 위험을 높인다고 했다.
이후 전기 설비는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가구 선택도 무계획이었다.
리모델링에 몰두한 나머지 공간 크기에 맞는 책상이나 의자를 고려하지 않고 구매해
문도 열리지 않는 좁은 구석에 책장이 끼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엔 반드시 도면과 수치를 확인하고, 전문가와 상의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상 밖의 변수, 그리고 해결의 기술

폐교 리모델링에서 가장 자주 마주친 것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나는 예산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각 공정에 버퍼(여유 예산)를 10% 정도만 넣었는데,
실제로는 전체 예산이 약 35%나 초과되었다.

가장 큰 변수는 지붕 구조물 내부의 부식이었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내부 철근이 산화되어 있어 구조 안전 진단에서 ‘보강 필요’ 판정을 받았다.
이는 단순히 비용 문제를 넘어서 안전에 직결된 사항이라 공사를 중단하고 구조보강을 우선 진행했다.

또한 예상치 못한 이웃 주민과의 소음 문제도 있었다.
공사 차량이 마을 골목을 드나들며 소음과 진동을 유발했고, 몇몇 어르신들이 불만을 표시했다.
나는 곧장 마을 회의를 소집해 공사 일정과 시간 조정, 차량 우회 방안 등을 설명했고,
이후 주민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여름철엔 곤충 문제가 발생했다.
폐교 특성상 벌레나 들쥐의 서식 가능성이 높았고, 특히 창고 공간에서 작은 박쥐까지 발견되었다.
나는 위생 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1년간 정기 관리 계약을 맺었다.
이런 예상 밖의 상황에 대해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문서로 관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얻은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나는 무엇을 배웠고, 왜 다시 할 의지가 생겼는가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폐교를 리모델링하면서 나는 단순한 공간 운영자가 아닌,
기획자이자 관리자, 소통가, 설계자, 때로는 기술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공간은 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는 진리를 체감했다.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공간을 되살리는 일은 곧 사람을 모으는 일’이라는 것이다.
건물이 예쁘다고 해서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그 공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가 핵심이었다.
즉, 리모델링은 시작일 뿐, 진짜 일은 그 이후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문제 없는 프로젝트는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요한 건 완벽한 진행이 아니라,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도 빠르게 회의하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유연한 사고와 실천력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고생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폐교 리모델링을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 공간을 통해 사람과 연결되고, 지역이 바뀌고, 나 자신도 성장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이 체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더 나은 계획과 더 나은 실행을 해낼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