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폐교를 점령한 강아지와 고양이들: 유기동물의 숨겨진 안식처가 되다

meat-mandu 2025. 7. 23. 10:18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생명, 폐교가 품은 새로운 가족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의 소규모 학교들이 급속도로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전국 곳곳에 ‘폐교’가 빠르게 늘어났다. 2024년 기준, 교육부에 등록된 공식 폐교 수는 3,800곳 이상이며, 이 중 절반 가까이는 방치되거나 소극적으로 임대 중인 상태다.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 조용히 녹슬어가는 정문, 그리고 시간이 멈춘 교실. 그러나, 이 공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들의 보금자리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강아지’와 ‘고양이’들, 즉 유기동물들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생명, 폐교가 품은 새로운 가족

 

버려진 교정에 남은 식수통, 비에 젖은 이불 조각, 햇빛이 잘 드는 교실 바닥 위의 고양이 무리. 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생존 방식이다. 도시 외곽 혹은 농촌 지역의 폐교 부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유기동물에게는 천적인 사람과 자동차, 포획망이 없는 안전지대가 된다. 더불어 체육창고, 급식소, 교실 안 책상 아래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완벽한 은신처 역할을 한다. 이제 폐교는 단순한 공공자산이 아니라, 보호받지 못한 생명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 이 글은 이 독특하고 따뜻한 변화의 현장을 생생히 담아내고, 향후 폐교와 유기동물 보호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제안한다.

 

 

유기동물의 숨겨진 생존 전략 – 왜 폐교를 택했는가?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유기동물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없는 공간’을 선호한다. 특히 유기된 직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자동차 소음, 불특정 다수의 접근, 비위생적 환경이 동물에게 극심한 불안을 유발한다. 이때 폐교는 유기동물에게 ‘천연 방공호’처럼 작용한다. 이미 사람이 떠난 공간이기 때문에 정적인 환경이 유지되며, 다년간 관리되지 않은 풀밭은 다양한 먹잇감(곤충, 설치류 등)을 제공한다. 또한 옛날 난방시설, 급식실 배관 아래, 운동장 모래바닥 등은 따뜻하거나 서늘한 온도층을 형성해 계절별 은신처로도 활용된다.

일부 폐교에서는 강아지 무리가 조직적으로 공간을 점령하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전라북도 모 폐교에서는 늙은 리트리버 한 마리가 운동장 중심부를 중심으로 세 마리의 강아지를 관리하는 구조가 관찰되었고, 인근 주민은 “학교 종소리가 멈춘 후 들리는 유일한 소리가 강아지 짖는 소리”라고 회상했다. 고양이의 경우, 접근성이 낮고 천장으로 이어지는 배선 통로, 창틀, 사물함 위를 주요 루트로 활용한다. 즉, 폐교는 유기동물에게 있어 '위에서 아래까지' 활용 가능한 입체적 생존 공간이다.

특히 폐교 주변이 산지나 하천과 연결되어 있을 경우, 이들 동물은 야생 생물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더욱 풍부한 생존 전략을 형성한다. 강아지는 새끼를 숨기고, 고양이는 먹잇감을 모아두며, 서로 간에 이동 경로를 나누어 쓰는 모습까지도 관찰된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개입 없이 ‘생명 본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자연 생태의 축소판으로 해석될 수 있다. 폐교가 단순한 유기 공간을 넘어, 복합 생물 서식지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 사례로 본 폐교의 유기동물 안식처화 – 보호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대한민국 각지의 폐교에서 유기동물이 자생적으로 정착한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경북 문경의 A폐교이다. 이곳은 2010년에 문을 닫은 농촌 소규모 초등학교로, 이후 10년 동안 방치되었으나 인근 산책로를 따라 유기견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2020년 기준 13마리의 강아지와 7마리의 고양이가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놀라운 점은, 이들 중 상당수가 서로 다른 종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건물과 운동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열을 정하고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강원도 평창의 B폐교는 지역 자원봉사 단체가 자체적으로 사료를 공급하며 ‘비공식 반려동물 쉼터’로 전환된 사례다. 이들은 폐교 건물 일부를 정비해 겨울철 난방 장치를 설치하고, 교무실을 임시 진료소로 개조해 수의사가 월 1회 방문하도록 만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을 거치며 오히려 마을의 유기동물 민원이 줄어들고, 폐교 주변 관광객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즉, 폐교가 '지역 사회 문제 해결의 거점'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 외에도 충남 청양, 전남 곡성, 제주 서귀포 등지의 폐교에서도 유기묘·유기견이 교실이나 창고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한 사례가 다수 존재하며, 일부 지자체는 이를 계기로 폐교를 동물보호시설로 재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버려진 생명'과 '버려진 공간'이 맞물려 상생할 수 있다는 점은, 공공자산의 새로운 활용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정책적 가능성과 현실적 과제 – 폐교를 유기동물 보호소로 전환하기 위한 조건

폐교를 유기동물 보호시설로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디어지만, 동시에 몇 가지 현실적 장벽도 존재한다. 첫 번째는 법적 구조 문제다. 현재 대부분의 폐교는 교육청 소유의 공공재산으로 분류되어 있어 임대나 활용이 까다롭다. 민간 단체가 활용하기 위해선 일정한 공공성·비영리성을 입증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시설관리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 두 번째는 시설의 노후화 문제다. 유기동물이 안정적으로 지내기 위해선 냉난방, 방역, 급식, 수의 진료 공간 등이 필요하며, 폐교의 오래된 설비로는 이를 곧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주민 수용성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인근 주민 중 일부는 악취, 소음, 야생화 가능성 등을 우려할 수 있으며, 지역 공감대를 확보하지 못한 채 진행된 프로젝트는 오히려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폐교를 유기동물 보호소로 활용하기 위해선 사전 설문조사, 주민 간담회, 공동 운영 주체 구성 등의 절차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성공한 사례들 역시 모두 지역사회와의 협력 구조를 먼저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교 + 유기동물 보호 조합은 단순한 보육 기능을 넘어, ‘교육적 가치’, ‘사회복지 연계’, ‘자연치유 프로그램’ 등 다층적 확장이 가능하다. 예컨대, 청소년 자원봉사 프로그램과 연계하거나, 동물매개치유 프로그램과 연결하여 폐교를 ‘돌봄+학습+보호’의 복합 공간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이처럼 폐교는 단순히 남은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장소다.

 

 

폐허에서 피어난 생명, 그리고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공간의 정의’

폐교에 유기동물이 정착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교육공간이 또 다른 형태의 생명교육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다시 그 교실 안으로 들어온 이유는 단순한 생존 본능 때문만은 아니다. 안전하고 조용하며, 햇살이 들고, 누군가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폐교는 쓰레기장이 아닌 '지붕이 있는 자연'이다.

이제 우리는 폐교를 ‘관리되지 않은 자산’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취약 생명체의 보호 거점, 지역 커뮤니티의 복원 플랫폼, 공공 콘텐츠의 창의적 공간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지역의 작은 학교가, 버려진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곳이 되고, 그 과정이 지역 주민과 함께 공유된다면, 폐교는 과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쓰는 공간의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