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라는 ‘버려진 장소’에 주목한 이유
내가 처음 이 폐교를 찾았을 때, 건물은 조용했고 운동장에는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위치는 충청북도 보은군의 한 외곽 마을로, 1997년에 폐교된 초등학교였다. 주변에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고, 마을 주민 대부분이 70대 이상이었다. 도시 기준으로 보면 개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방문했다. 그런데 건물 구조가 매우 튼튼했고, 2층 건물에 총 6개 교실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운동장이 넓고 남향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당시 나는 지역문화 기획자로 일하면서 ‘지방 문화 불균형’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도시에 집중된 문화 자원을 지방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거점 공간이 필요했다.
이 폐교는 문화센터로 전환하기에 이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교실은 워크숍 공간, 강의실, 전시실, 작업실 등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 체육관은 공연장이나 세미나홀로 개조가 가능했다. 처음부터 신축하면 수억 원이 드는 공간이었지만, 폐교는 기본 구조를 살리면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재활용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이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다. 학교가 문 닫고 마을에 활기가 사라졌다고 했고, 다시 이 공간이 사람들로 채워지는 걸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결심했다. 이 폐교를 지역 문화의 거점 공간으로 바꾸겠다고.
기획부터 예산 확보까지의 현실적 과정
폐교 리모델링은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행정 절차였다. 이 학교는 교육청이 아닌 마을 소유도 아니었고, 도 교육청이 관할하고 있었다. 나는 교육청 시설과에 정식으로 ‘공공문화 활용 목적의 장기 임대 요청’을 제출했다. 이후 몇 차례 회의와 실사를 거쳐 조건부 임대 승인을 받았다. 기간은 10년, 조건은 ‘지역공공사업에 한해 무상 사용’이었다.
그다음 과제는 예산이었다. 문화센터로 활용하려면 리모델링에 최소 수천만 원이 들었다. 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 기반 조성 사업에 공모했고, 지역 활동 실적과 기획안을 포함한 제안서를 제출했다. 결과적으로 5천만 원 규모의 1차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군청 협력과 기부금, 후원사 섭외 등을 통해 충당했다.
리모델링 설계는 ‘기억을 살리는 디자인’을 주제로 했다. 기존 교실 벽면은 최대한 그대로 두었고, 낡은 창틀과 칠판도 보존했다. 내부만 현대적으로 개조하고, 바닥은 나무 대신 마감재를 깔아 습기 문제를 해결했다. 천장에는 단열재를 넣었고, 오래된 형광등 대신 LED 조명을 설치했다.
특히 체육관은 가장 큰 난관이었다. 구조는 튼튼했지만, 난방과 음향 시설이 전무했고 바닥이 갈라져 있었다. 나는 이 공간을 '열린 공연장'으로 설정하고, 스탠드 조명을 설치하고 음향 장비를 기초 수준으로 맞춰 저예산 개조를 진행했다. 모든 공정은 지역 업체 위주로 진행했으며, 4개월 만에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공간 개방과 프로그램 운영의 실제 모습
공간을 처음 개방한 날은 잊을 수 없다. ‘마을이 살아 숨 쉬는 문화날’이라는 주제로 개관행사를 열었고, 주민 100여 명이 찾아왔다. 처음엔 걱정도 많았다. ‘과연 사람들이 찾아올까?’,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지?’라는 고민이 많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공간은 크게 네 가지 목적에 맞게 운영됐다. 첫째, ‘문화예술 강좌’ 프로그램이었다. 지역 예술인들과 협업해 도예, 수채화, 서예 등의 강좌를 운영했고, 마을 주민의 참여율은 높았다. 둘째, ‘전시 및 오픈스튜디오’ 형태로 활용했다. 청년 창작자들을 초청해 공간 일부를 작업실로 제공하고, 그들이 만든 결과물을 전시하도록 구성했다. 셋째, ‘주말 공연/영화 상영’이었다. 체육관을 개조한 무대에서 마을 합창단 공연과 독립영화 상영회를 열었고, 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자가 많았다.
넷째는 ‘지역연계 프로젝트’였다. 예를 들어, 인근 농가와 협업해 ‘로컬푸드 쿠킹 클래스’를 진행했고, 마을 어르신이 강사로 참여해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프로그램은 철저히 ‘지역과 연결된 기획’으로 구성됐다.
운영 첫 해, 방문자 수는 약 3,000명 이상이었다. SNS 노출, 블로그 후기, 마을 단체홍보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외부에서도 방문객이 찾아왔다. 주말에는 서울이나 대전에서 일부러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간은 더 이상 버려진 폐교가 아니었다. 사람과 이야기가 오가는 ‘살아 있는 장소’가 되었다.
폐교 리모델링의 본질과 지속가능한 과제
폐교를 문화센터로 바꾸는 작업은 건물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단순히 책상과 의자를 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의미와 맥락을 담아야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공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폐교 리모델링을 말하지만, 실제로 실행까지 옮기는 사례는 드물다. 이유는 명확하다. 공간 유지에는 사람과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달 기획 회의를 열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프로그램을 조정했다. 운영 예산은 일부 수익(대관료, 강좌비 등)과 군청 협조, 민간 협약을 통해 충당했다. 100% 자립은 어렵지만, ‘지역에 꼭 필요한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행정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세대 연결’이다. 현재는 중장년층과 어린이 위주 프로그램이 많지만, 청년층과의 연결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문화센터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온라인 전시나 원격 강좌도 시도하고 있다.
이 폐교는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한 마을의 분위기를 바꾸고, 사람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 변화의 씨앗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버려진 공간일지 몰라도, 내게는 지역문화의 숨결이 깃든 중요한 플랫폼이다. 앞으로도 이 공간이 지속적으로 살아 숨 쉬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기획서를 쓰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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