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폐교 부지를 활용한 예술 창작 공간

meat-mandu 2025. 7. 6. 07:32

폐교, 사라진 교실에 다시 불이 켜지다

사람들은 학교라는 공간을 추억할 때, 낡은 나무 바닥, 분필 가루 날리는 칠판, 복도에 퍼지는 종소리 같은 따뜻한 기억을 함께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문을 닫는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문을 닫은 폐교는 대부분 방치되거나, 지자체의 재산 목록 속에서 무심히 잊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폐교 공간이 예술 창작의 거점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교육의 숨결이 멈춘 공간에, 다시금 창작의 열기와 상상력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폐교, 사라진 교실에 다시 불이 켜지다

 

예술은 원래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며 시작되곤 한다. 폐교는 외려 그 낯선 장소로서, 독창적 시도와 실험이 가능한 이상적인 공간으로 주목받는다. 더 이상 학생은 없지만, 새로운 예술가들이 모이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창작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 가능성과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폐교가 예술을 품으면서 지역 사회에 어떤 파장을 가져오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폐교를 예술 공간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의 시작

폐교를 예술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움직임은 단순한 리모델링을 넘어선다. 구조물의 보존과 동시에, 예술 활동에 적합하도록 공간을 재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서울, 부산처럼 문화 인프라가 발달한 대도시에서 먼저 이러한 시도가 있었으나, 최근에는 충북 제천, 전북 고창, 경북 영주 같은 중소 도시나 농촌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충북 단양에 위치한 폐교를 개조한 ‘OO창작소’다. 이 공간은 교실 하나하나를 작가들의 개인 작업실로 탈바꿈시켰고, 오래된 강당은 전시회와 연극 공연장이 되었다. 기존의 학교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현대 예술의 기능을 접목시킨 점이 눈에 띈다. 또 다른 사례로는 강원도 정선의 한 폐교를 기반으로 운영 중인 청년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있다. 이곳에서는 국내외 작가들이 일정 기간 머물면서 작품을 제작하고,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가진다. 예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폐교라는 구체적 장소를 기반으로 삼을 때에는 지역성과 공동체성이라는 추가적 가치를 얻게 된다.

 

 

예술가에게 폐교는 단순한 공간 그 이상이다

예술가들에게 폐교는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는 시간의 층위와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고, 사람의 삶이 머문 자취가 배어 있다. 창작자들은 이 ‘결핍의 공간’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끼며,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여백을 찾는다. 실제로 폐교를 예술 공간으로 활용한 작가들의 공통적인 증언은 '공간이 주는 감정적 자극'에 있다. 교실의 낡은 창문, 먼지가 내려앉은 교탁, 시간에 닳아 퇴색된 게시판. 이런 물리적 흔적들이 창작의 소재가 되고, 작업의 주제가 되며, 심지어 전시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특히 설치 미술, 퍼포먼스 아트, 사운드 아트 등 장소 특정적 예술(Spatial Art)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폐교는 무궁무진한 실험의 장이 된다. 공간 자체가 살아 있는 재료가 되는 셈이다. 이런 환경은 예술의 본질인 ‘비일상성’을 극대화시킨다. 도심의 갤러리나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몰입감과 현실 초월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 예술가는 “폐교에서 작업하면 마치 내가 이 공간의 마지막 기억을 캔버스에 남기는 기록자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적, 철학적 연계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결과적으로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배가시킨다.

 

 

지역과 예술이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 긍정적 변화

폐교를 활용한 예술 공간은 단지 예술가들만을 위한 실험실이 아니다. 지역 사회와의 접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문화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예술 레지던스에서는 지역 주민을 위한 예술 수업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어린이 대상 워크숍, 마을 축제와 연계된 전시회도 진행된다. 예술과 지역이 맞닿는 순간, 폐교는 단순한 ‘버려진 공간’이 아닌 ‘문화 공동체의 중심’이 된다. 특히 지방소멸이라는 위기 앞에서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창작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예술은 지역 주민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외부인의 유입을 통해 마을에 경제적,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폐교를 창작소로 탈바꿈한 몇몇 지역에서는 인근 숙박업소의 매출이 증가하고, 청년 예술가들의 정착이 늘어나면서 인구 유입 효과까지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순환은 지자체와 민간이 협업하여 더 큰 문화 생태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이제 폐교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장소가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학교는 다시금 사람을 모으고, 창작은 공동체를 잇는다. 이처럼 예술이 폐교에 스며들면서, 그 공간은 과거의 침묵을 깨고, 현재의 활기로 다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