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폐교 교정에 핀 벼 한 포기로 시작한 농업 실험

meat-mandu 2025. 7. 17. 09:32

교정의 흙 위에 다시 뿌려진 씨앗, 그건 농사가 아니었다

서울 외곽, 오래전 폐교가 된 한 초등학교에는 오랫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다. 유리창은 깨졌고, 운동장은 잡초가 자랐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멈춘 지 오래였다. 하지만 2023년 봄, 그 운동장 한복판에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바로 벼 한 포기가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교정의 흙 위에 다시 뿌려진 씨앗, 그건 농사가 아니었다

 

누군가 일부러 심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냥 벼가 아니라, 도시 속에서 농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고자 하는 한 청년의 실험이었다. 그는 농부가 아니었고, 학교와도 관련이 없었다. 다만 “죽은 공간”이라 불리는 폐교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그 작은 벼 한 포기를 시작으로, 도시농업이라는 단어가 폐허가 된 운동장 위에 던져졌다. 이건 단순한 텃밭 조성이 아니다. 이것은 버려진 공공 자산을 다시 살리는 시도이며, 지속가능한 도시 생태계를 위한 실험이었다. 씨앗은 뿌려졌고, 그 안에는 ‘농사’ 이상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도시농업 실험실로 변한 폐교 – 청년의 손에서 다시 살아나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은 29세의 도시농업 스타트업 대표, 최서준이었다. 그는 원래 IT 개발자였지만, 도시의 숨겨진 공간을 다시 활용하는 법을 고민하다가 ‘폐교’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연히 알게 된 구도심의 폐교 운동장은 그에게 기회의 땅처럼 보였다. 그 공간에는 수도가 있었고, 전기도 들어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미 ‘버려진 공간’이라는 사회적 인식 덕분에 실험하기에 부담이 적었다는 점이었다. 최 대표는 관할 지자체와 협력하여 유휴공간 임대 계약을 맺고, 도시농업 실험장을 만들었다. 교정에는 4평짜리 논이 조성됐고, 작은 유리온실이 들어섰으며, 수경재배 시스템도 설치됐다. 교무실은 데이터 기록실로, 교실 하나는 도심농업 교육공간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누구도 관심 없던 그 실험은 점차 ‘도시 속 새로운 생명 회로’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가 심은 건 단지 벼가 아니라, 도시가 자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폐교의 운동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 교육, 농업, 지역을 잇다

이 폐교 도시농업 프로젝트는 단순히 작물 재배에 그치지 않았다. 최 대표는 이 공간을 마을과 도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거점으로 설계했다. 도시 아이들은 주말마다 이곳을 방문해 생애 첫 모내기를 체험했고, 지역 주민들은 폐교에 다시 왕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물을 퍼 나르며 손으로 생명을 느끼는 순간들. 그것은 학습 이상의 체험이었고, 교과서보다 더 생생한 교육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공간이 ‘폐교’라는 이름을 가진 채로 여전히 교육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역 농가와 연계한 청년 농부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되었고, 수확된 벼는 지역사회 행사에서 나눔의 형태로 배포됐다. 한 때 조용히 사라진 폐교는 이제 아이들의 소리와 벼의 흔들림, 그리고 미래 농업에 대한 상상이 교차하는 ‘살아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운동장은 과거에도 학습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더 깊은 차원의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버려진 공간이 품은 생명 – 폐교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2024년 가을, 폐교 운동장에 자란 벼는 드디어 수확을 맞았다. 물리적인 수확보다 의미 있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폐교는 끝난 공간’이라는 고정관념 대신 ‘시작 가능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도시농업은 환경과 자원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공동체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함께 묶는다. 이 실험은 기술도 돈도 크게 들지 않았지만, 아이디어와 실행력 하나로 도시의 죽은 공간을 살려냈다. 최 대표는 지금 두 번째 폐교를 물색 중이다. 그는 말한다. “폐교는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주길.” 도시 한복판의 버려진 교정 위에 핀 벼 한 포기. 그것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라, 사라진 공간이 다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증거였다. 도시 곳곳의 폐교가 아직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누군가가 그 공간에 씨앗을 뿌릴 준비만 된다면, 그곳은 또 하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

 

 

폐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무대다

폐교라는 단어는 여전히 ‘끝’, ‘쇠퇴’, ‘소멸’이라는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폐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도시농업은 그 대표적인 반전 사례다. 버려졌다고 여겨진 운동장은 오히려 새로운 농업의 테스트베드가 되었고, 교육과 환경, 공동체가 함께 얽히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더불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플랫폼으로도 사용 가능하고 젊은이들의 농업에 대한 기피현상을 조금이나마 줄일수 있고 농촌의 인구 감소 및 인력 부족 현상를 줄일수 있는 좋은 전환의 방법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구조가 아니라, 그 공간을 다시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의 의지다. 이 프로젝트는 거창한 자본이나 시스템이 아닌, 한 청년의 실천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모든 지역사회에 적용 가능한 현실적인 모델이다. 게다가 폐교는 전국적으로 이미 수백 개 이상 존재하며, 대부분 공공 자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이며, 지속가능한 지역 회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폐교를 '흘러간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쓰여야 할 공간’으로 바라봐야 한다. 도시의 심장부에서, 잊힌 운동장 위에서, 그렇게 벼 한 포기가 말해준 것이다. 변화는 거창한 기획이 아니라, 흙 한 줌과 씨앗 하나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