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폐교 창고 어둠 속에서 피어난 농업 혁신

meat-mandu 2025. 7. 17. 17:59

햇빛 없는 폐교 창고에서 자란 건 단순한 버섯이 아니었다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한 폐교. 학생이 떠난 지 15년이 넘은 이 학교는 그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공간 유령’이었다. 운동장은 풀밭이 되었고, 건물은 비둘기의 보금자리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2024년 봄, 학교 지하 창고에서 묘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흙냄새와 수분, 그리고 은은한 훈연향. 그곳엔 농기계도, 햇빛도 없었다. 대신 잘게 잘린 톱밥 위에 하얗고 둥근 버섯들이 자라고 있었다.

햇빛 없는 폐교 창고에서 자란 건 단순한 버섯이 아니었다


그 농장의 주인은 32세의 청년 농업인 류지훈. 그는 도심 속 미사용 공간을 활용한 '버섯 도시농업 시스템'을 실험 중이었다. 폐교 운동장과 옥상에서의 농사에 이어, 이제는 폐교 내부의 어둠조차 생산성 있는 공간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그는 폐교 지하 창고의 밀폐성과 습도를 이용해 버섯을 키우는 실내 배양장을 만들었고, 이 구조는 기존의 노지 농업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버섯은 햇빛 없이도 자란다. 하지만 이 버섯이 자란 공간은 단순한 작물재배지가 아니라, 도시 속 '음지의 가능성'을 시각화한 장소였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버려진 공간이라 생각하는 곳에서, 생명은 충분히 자랄 수 있어요."

 

 

폐교 지하 창고는 어떻게 고수익 농장으로 바뀌었는가

류지훈은 농업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었고, 이전까지 버섯을 키워본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건축을 공부하며 '공간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도심 폐교에 남아 있는 지하 창고가 항온·항습 조건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는 곧바로 지자체와 접촉해 해당 폐교를 유휴공간 임대 대상으로 등록했고, 지하 공간을 식용 버섯 배양장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LED 조명으로 대체광을 구성하고, 이산화탄소 수치를 조절하기 위한 배기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톱밥 배지와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순환형 버섯 재배 시스템을 도입했다. 폐교 내 급식실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일부 퇴비화해 배지로 활용하며, 순환농업의 구조를 만들었다.
최초 생산 품종은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이었고, 이후에는 색이 진하고 저장성이 높은 흑목이 버섯으로 확대되었다. 그는 버섯을 수확해 SNS 기반 D2C(Direct to Consumer) 방식으로 도시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1년 차에는 약 3,000팩이 팔렸고, 2년 차에는 버섯을 원재료로 한 건강 간식 브랜드까지 론칭했다.
폐교 지하 창고는 이제 도시형 고부가가치 작물 실험장이자, 도시의 쓰임을 다시 쓰는 모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 떠난 공간에 들어선 도시농업 교육 프로그램

류지훈은 단순한 생산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교육은 공간에 의해 완성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폐교 내 빈 교실 2개를 개조해 도시농업 체험 교실을 만들었다.
이 공간은 매주 금요일마다 지역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내 버섯 재배 체험 수업’을 제공했고, 서울시 도시농업 지원센터와 협력해 '폐교 내 순환형 농업 교육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버섯 포자를 손으로 심고, 이끼와 톱밥으로 배지를 만들며, 수확한 버섯을 요리해보는 과정을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이 경험은 단순한 농사 체험이 아니라, 자원이 순환되고 공간이 살아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는 미래 교육의 일부였다.
이 체험은 지역 교육청과 연계되어 '도시농업 자유학기제 연계 수업'으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매월 400명 이상의 학생들이 폐교를 찾아오는 구조로 발전했다.
죽어있던 공간이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고, 그 안에서 지식과 감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폐교는 ‘과거의 장소’가 아니라 ‘미래를 실험하는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었다.

 

 

폐교는 이제 도시 자립 생태계의 핵심 거점이 된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개인의 실험을 넘어서, 지금 국내 도시농업 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으로 조명받고 있다.
서울시를 포함한 4개 광역자치단체는 ‘도시 유휴공간 농업 전환 프로젝트’를 통해 폐교·폐공장·공공 창고 등 미활용 공간을 지역 자립 생태계로 전환하고 있으며, 류지훈의 폐교 버섯농장은 정책적 파일럿 모델 1호로 선정되었다.
그는 올해 폐교 3호점 계약을 앞두고 있으며, ‘도심 버섯 농업 프랜차이즈화’를 위한 인큐베이팅 센터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처럼 폐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기후 대응형 도시 회복 솔루션의 실험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버려졌다’는 단어를 ‘무가치하다’는 의미로 오해하지만, 폐교 사례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군가의 손이 닿고, 한 번의 상상이 작동되면 폐교는 곧 경제적 공간, 교육적 공간, 생태적 공간, 심지어는 정서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버섯은 어둠 속에서 자란다. 폐교 역시 어두운 공간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생명을 길러낸다면, 그 공간은 다시 빛을 가진다.

 

 

앞으로는 건설이 아닌 재생이다 그 중심은 폐교에 있다

도시는 공간 부족과 속도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봐야 할 방향은 ‘건설’이 아닌 ‘재생’이다. 지금도 도시 곳곳엔 폐교라는 이름의 유휴 공간들이 무수히 많다. 그중 지하 창고는 가장 어두운 장소로,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버섯은 어둠 속에서 자라듯, 이 공간들도 다시 피어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도시가 자립하려면, 물리적인 식량 생산뿐 아니라, 사람들의 감각과 삶의 균형이 함께 돌아와야 한다. 폐교는 그 실험을 시작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장소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지하에서 자란 버섯은, 공간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철학이자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폐교는 단지 교육이 끝난 곳이 아니라, 생명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토양이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어쩌면 커피 찌꺼기 위에 피어난, 조용한 흰 버섯 한 송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