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옥상에 물을 끌어올린 남자, 도시는 그를 농부라 부르지 않았다
서울 외곽의 폐교 한 채. 이미 운동장은 도시농업으로 다시 태어났고, 교정 한가운데 심긴 벼 한 포기가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도시 한복판, 옥상 위, 아무도 올려다보지 않던 그곳에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폐교를 활용해 도시농업을 구현한 청년 창업자 최서준은 이번엔 학교 옥상 공간을 수경재배 실험장으로 바꾸기로 했다. 물과 빛, 바람만으로 작물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도심 옥상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단순한 도전이 아니었다. 전기와 물 배관, 태양광 패널, 자동화 시스템까지 수많은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야 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단순한 먹거리 실험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 순환할 수 있는 모델을 찾는 일”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 모델의 중심에, 버려졌던 폐교라는 자산이 있었다. 도시 한복판의 옥상 위에서, 그는 폐교 재생의 두 번째 장을 열기 시작한 것이었다.
도시농업의 위층 실험 – 수경재배 시스템은 어떻게 폐교에 뿌리내렸나
옥상에서 수경재배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폐교 건물의 내구성, 배수 시스템, 구조적 안정성부터 검토해야 했다. 최서준은 서울시 기술진단센터와 협력해 옥상 내 진동·하중 테스트를 거쳤고, 최소 1톤 이상의 수경배양 장비를 안전하게 설치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 이후 그는 옛 과학실에서 빼온 실험용 선반을 재활용해 모듈형 배양대를 만들고, 방치되어 있던 위생실의 급수관을 연결해 자동 순환 시스템을 구축했다. 물은 3층 옥상까지 전기 펌프를 통해 끌어올렸고, 태양광 패널은 실험실 유리창 위에 부착했다. 재배 품종은 도시 내 물류 유통이 빠른 루꼴라, 청경채, 민트, 적겨자 등 고부가가치 소량채소로 선정됐다. 그는 AI 기반 조도센서와 수분센서를 자체 개발해 식물의 생장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 폐교는 단순한 실험장이 아니라, IT기술과 농업이 융합되는 진짜 ‘미래형 생장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이 구조는 도시 내 유휴공간을 활용한 소규모 스마트팜 모델로 현재 정책기관과 대기업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학교 옥상에서 자란 채소는 어떻게 도시인을 바꿨나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전환점은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저 옥상에서 뭐 하는 거냐’는 의문이 많았지만, 수확물이 하나둘 마을 공유 냉장고로 들어가고, 아이들이 수경재배 체험교실에서 직접 수확한 채소를 가져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폐교의 옥상은 단순한 ‘기술 실험장’이 아닌, 도시 공동체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옥상 장터’에서는 직접 재배한 채소와 로컬 청년들의 수공예품, 텃밭 체험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됐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엔 화분이 놓였고, 수경배양대 주변엔 학교 시절 사용하던 의자가 놓이며 모두가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폐교의 재활용을 넘어, 지역 주민의 일상까지 바꾸는 도시 회복 실험이었다. 최 대표는 말했다. “도시는 빠르게 살아가야만 하는 공간이지만, 그 위에 작물 하나라도 심으면 속도가 느려지고, 시선이 바뀌어요. 이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도시가 아닌 삶을 보게 됩니다.” 결국 옥상은 작물만 자라는 곳이 아니라, 도시인의 감각이 회복되는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폐교는 끝이 아니라, 도시 자립의 시작이었다
1년이 지나자 이 폐교 옥상 수경재배 프로젝트는 서울시 유휴시설 전환 우수 사례로 선정됐고, 타 지자체에서도 도입 요청이 이어졌다. 단순한 농업 기술이 아니라, ‘도시공간 회복 모델’로서의 폐교 활용 가능성이 인정받은 것이다. 최서준은 더 나아가, 해당 폐교를 ‘도시농학교’로 전환하기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농업+교육+기술이 융합된 이 공간은 현재 6개의 교육기관과 협약을 맺고, 도시농업 진로체험/인턴십/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까지 준비 중이다. 결국 그는 벼 한 포기에서 시작해 도심 속 가장 복잡한 질문에 가장 단순한 답을 제시했다: “도시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될 수 있다.” 학교는 더 이상 학생이 없어 닫힌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배움과 순환이 가능하다는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 숨은 폐교가 수백 개다. 그리고 그 중 단 한 곳이라도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면, 도시는 다시 살아난다.
도시 속 사라진 공간을 농장으로 바꾸다
도시는 더 이상 공간 부족을 이유로 변화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무수한 ‘잊힌 공간’이 있고, 그 중심엔 폐교가 있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과 수업이 이어졌던 공간이 이제는 도시 생태계의 회복을 위한 거점이 되고 있다. 옥상 위의 수경재배 시스템은 기술과 자연, 사람과 도시의 연결점이다. 특히 폐교는 이미 기반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초기 자본 부담 없이 창업과 실험이 가능하다. 이 글에서 다룬 프로젝트는 단순한 청년 창업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 도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힌트다. 앞으로의 도시 계획은 ‘건축’을 넘어서 ‘재생’을 말해야 한다. 폐교는 죽은 공간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자원이며, 다시 궤도를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살리는 건 거대한 정책보다, 옥상에서 루꼴라 한 포기라도 심어보겠다는 누군가의 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잊힌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다. 폐교 위에 피어난 채소는 그 상상력의 증거다.
'폐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폐교 창고 어둠 속에서 피어난 농업 혁신 (0) | 2025.07.17 |
---|---|
폐교 교정에 핀 벼 한 포기로 시작한 농업 실험 (0) | 2025.07.17 |
폐교 기숙사에서 일어난 단 한 번의 재회 – 47년 만의 동창 모임 (0) | 2025.07.16 |
도심 한복판 폐교를 1인 극장으로 만든 남자의 프로젝트 (0) | 2025.07.16 |
폐교된 운동장 위의 드론 농업 – 혁신은 버려진 곳에서 시작된다 (0) | 2025.07.16 |